무언가 나를 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당신도 보았느냐고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이미 그곳에 없다.
무언가 나를 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이름을 짓는다.
여러 개의 문장을 길게 이어서
누구도 한 번에 부를 수 없는 이름을.
기어코 다 부르고 난 뒤에도 여전히 알 수 없어
한 번 더 불러보게 만드는 그런 이름을.
나는 그게 소설의 구실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서른」의 한 장면은 내 가족, Y의 일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작가들이 ‘작가의 말’을 쓰는 밤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 몸을 타고 돌았을 말[言], 피, 그런 것들을 그려본다. 말이 트이는 힘은 그것을 막고자 하는 운동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며. 내가 모르는 밤, 아는 밤, 그런 밤을 그려본다. ‘소설 쓰는 밤’이 아닌 ‘작가의 말’을 쓰는 밤을 떠올리니, 그들 모두가 작아 보여 가깝다.
다시 ‘작가의 말’을 쓰게 된다면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지면이 시시하고 빤한 것이 되더라도. 항상 안다고 생각하면서 몰랐던 게 있는데, 감사의 말이 가지는 무게였다. 작가들의 그 많은 말이 닮은 것은, 그들 곁에 늘 누군가가 있어주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 누군가 때문에 나는 늘 빚지고, 감동하며 살아간다.
어서 전했으면 좋았을 말을 이제 전한다. 아껴서- 부르지 못한 이름들에게 인사를, 그리고 내게 위안 받았다고 말해준 독자, 이름 모를 당신. 책 뒤에 붙는 이 한 바닥을 빌려 말하니 나도, 진심으로 당신에게 위안받았다.
마침내 시시해지는 내 마음이 참 좋다.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03년부터 쓴 단편들을 모았습니다.
작가라서, 무슨 이야기를 썼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기쁘고, 다행입니다.
나는 문학이 나의 신앙이 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소설을 쓰는 데 배움이나 경험이 반드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소설 안의 어떤 정직. 그런 것이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제가 당신에게 매우 딱딱한 얼굴로 보내는 첫 미소입니다.
언제고 곧, 다시 봅시다.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여름을 맞는다.
누군가의 손을 여전히 붙잡고 있거나 놓은
내 친구들처럼
어떤 것은 변하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 채
여름을 난다.
하지 못한 말과 할 수 없는 말
해선 안 될 말과 해야 할 말은
어느 날 인물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인물이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말은 무얼까 고민하다
말보다 다른 것을 요하는 시간과 마주한 뒤
멈춰 서는 때가 잦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내가 이름 붙인 이들이 줄곧 바라보는 곳이 궁금해
이따금 나도 그들 쪽을 향해 고개 돌린다.
2017년 여름
무언가 나를 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당신도 보았느냐고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키지만
그것은 이미 그곳에 없다.
무언가 나를 지나갔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이름을 짓는다.
여러 개의 문장을 길게 이어서
누구도 한 번에 부를 수 없는 이름을.
기어코 다 부르고 난 뒤에도 여전히 알 수 없어
한 번 더 불러보게 만드는 그런 이름을.
나는 그게 소설의 구실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
「서른」의 한 장면은 내 가족, Y의 일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다섯번째 소설집을 냅니다.
그사이 여러 계절을 나며 사람과 풍경이, 시절과 가치가 변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소설 속 인물처럼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인 양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먼 곳의 수신인을 향해 그들이 결코 들을 수 없는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상실이 무언지 모른 채 상실을 쓰고 부재가 무언지 모른 채 부재를 써왔다고 생각하면서요.
앞으로도 저는 여전히 삶이 무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다섯번째 소설집을 냅니다.
그사이 여러 계절을 나며 사람과 풍경이, 시절과 가치가 변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소설 속 인물처럼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인 양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먼 곳의 수신인을 향해 그들이 결코 들을 수 없는 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상실이 무언지 모른 채 상실을 쓰고 부재가 무언지 모른 채 부재를 써왔다고 생각하면서요.
앞으로도 저는 여전히 삶이 무언지 모른 채 삶을, 죽음이 무언지 모른 채 죽음을 그릴 테지만, 때로는 그 ‘모름’의 렌즈로 봐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음을 새로 배워나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뒤늦은 깨달음의 형태로 다가오니까요.
_‘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을 쓰며 여러 번 헤맸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있지만, 작가로서 이 인물들이 남은 삶을 모두 잘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삶은 비정하고 예측 못할 일투성이이나 그럼에도 우리에게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이 소설을 쓰며 여러 번 헤맸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있지만, 작가로서 이 인물들이 남은 삶을 모두 잘 헤쳐나가길 바라는 마음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삶은 비정하고 예측 못할 일투성이이나 그럼에도 우리에게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
삶은 가차없고 우리에게 계속 상처를 입힐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 모두 마지막에 좋은 이야기를 남기고, 의미 있는 이야기 속에 머물다 떠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_‘작가의 말’에서
이전 원고를 오랜만에 다시 읽고, 고치고, 버리다
‘이름’이란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저를 스쳐간
사람의 이름, 풍경의 이름, 사건의 이름이요.
저는 여전히 어떤 이름들을 잘 모르고
삶을 자주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언가 호명하려다
끝내 잘못 부른 이름도 적지 않고요.
이 책에는 그런 저의 한 시절과 무능 그리고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드물게 만난 눈부신 순간도요.
그 이름과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여기 적습니다.
이미 그 이름이었거나
그 이름이 될 많은 분들에게
여기 미처 다 적지 못한 다른 이름에게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동료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2019년 초여름
첫 산문집에 새 옷을 입혀 다시 내보냅니다.
덕분에 저도 오래전에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최근에 쓴 산문들과의 차이가 보였습니다.
예컨대 첫 산문집에 등장한 제 ‘젊은 부모’는 두번째 산문집에 이르러 쇠약해지셨고, 제가 오십 주년 축사를 건넨 출판사는 육십 돌을 넘었습니다. 이국의 한 시인이 제게 준 연필은 특별한 새 주인을 찾았고, 자전거 앞자리에서 아빠를 돌아보며 웃던 K 선배의 딸은 어엿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세번째 산문집을 낼 즈음이면 또 많은 게 달라져 있겠지요? 시시각각 모양을 바꾸며 흘러가는 구름처럼 혹은 그 구름을 옮기는 바람처럼요.
물론 변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제 “성정의 경박하고 아름다운 어떤 부분, 내가 껴안는 상스러움의 많은 부분”은 지금도 여전하고, 벌받듯 맨손으로 도시의 “축제를 받치고 있을” 사람들의 근심 또한 그대로이거나 더 깊어진 듯합니다. 옛날 시의 아름다움과 누군가를 애도하는 이들의 마음 또한 변하지 않은 듯하고요.
변하지 않은 것 중에는 원고 앞에서 매번 쩔쩔매는 저의 모습도 있습니다. 어떤 글을 쓰든 고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 그 과정과 수고를 다른 데 양보하거나 위탁하고픈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뭘까 생각합니다.
제 속의 어떤 고지식함 때문일 수도 혹은 이 산문집에 적은 여러 이름 앞에서 무언가 삼가는 마음, 옷매무새를 살피는 예의 같은 것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닐 테지만요.
한동안 글쓰기에 용기를 잃었던 시기, 제게 힘이 되어준 이름들에게 감사와 우정의 인사를 전합니다. 정말이지 얼마나 힘이 됐는지 모릅니다.
2026년 한여름
작가들이 '작가의 말'을 쓰는 밤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 몸을 타고 돌았을 말[言], 피, 그런 것들을 그려본다. 말이 트이는 힘은 그것을 막고자 하는 운동 안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며. 내가 모르는 밤, 아는 밤, 그런 밤을 그려본다. '소설 쓰는 밤'이 아닌 '작가의 말'을 쓰는 밤을 떠올리니, 그들 모두가 작아 보여 가깝다.
다시 '작가의 말'을 쓰게 된다면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지면이 시시하고 빤한 것이 되더라도. 항상 안다고 생각하면서 몰랐던 게 있는데, 감사의 말이 가지는 무게였다. 작가들의 그 많은 말이 닮은 것은, 그들 곁에 늘 누군가가 있어주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 누군가 때문에 나는 늘 빚지고, 감동하며 살아간다.
어서 전했으면 좋았을 말을 이제 전한다. 아껴서ㅡ부르지 못한 이름들에게 인사를. 그리고 내게 위안받았다고 말해준 독자, 이름 모를 당신. 책 뒤에 붙는 이 한 바닥을 빌려 말하니 나도, 진심으로 당신에게 위안받았다.
마침내 시시해지는 내 마음이 참 좋다.
작가들이 '작가의 말'을 쓰는 밤에 대해 생각한다. 그들 몸을 타고 돌았을 말[言], 피, 그런 것들을 그려본다. 말이 트이는 힘은 그것을 막고자 하는 운동 안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며. 내가 모르는 밤, 아는 밤, 그런 밤을 그려본다. '소설 쓰는 밤'이 아닌 '작가의 말'을 쓰는 밤을 떠올리니, 그들 모두가 작아 보여 가깝다.
다시 '작가의 말'을 쓰게 된다면 꼭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지면이 시시하고 빤한 것이 되더라도. 항상 안다고 생각하면서 몰랐던 게 있는데, 감사의 말이 가지는 무게였다. 작가들의 그 많은 말이 닮은 것은, 그들 곁에 늘 누군가가 있어주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 누군가 때문에 나는 늘 빚지고, 감동하며 살아간다.
어서 전했으면 좋았을 말을 이제 전한다. 아껴서ㅡ부르지 못한 이름들에게 인사를. 그리고 내게 위안받았다고 말해준 독자, 이름 모를 당신. 책 뒤에 붙는 이 한 바닥을 빌려 말하니 나도, 진심으로 당신에게 위안받았다.
마침내 시시해지는 내 마음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