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7일 : 105호

이 책이 지금
시간의 여행자들에게
삶이 쌓이다보면 자연히 기억과 사건이 늘고, 그만큼 후회도 쌓입니다.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 다시 해보면 어땠을까. 김연수의 소설은 이제 황진이의 시조처럼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두었다가, '어론 님 오시면 굽이굽이 펴는' 것도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의 여행자들은 깊은 산중 눈 내리는 삼일포로 가듯 허정허정 걷습니다.
나는 내게서 뭔가를 뺏어가고 또 뭔가를 주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이 내게서 뭔가를 빼앗아갈 때는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러나 뭔가를 줄 때는 또 얼마나 다정했는지.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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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쌓이다보면 자연히 기억과 사건이 늘고, 그만큼 후회도 쌓입니다.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 다시 해보면 어땠을까. 김연수의 소설은 이제 황진이의 시조처럼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두었다가, '어론 님 오시면 굽이굽이 펴는' 것도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경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의 여행자들은 깊은 산중 눈 내리는 삼일포로 가듯 허정허정 걷습니다.
나는 내게서 뭔가를 뺏어가고 또 뭔가를 주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시간이 내게서 뭔가를 빼앗아갈 때는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러나 뭔가를 줄 때는 또 얼마나 다정했는지.
(작가의 말 중)
역사소설부터 SF까지, 김연수의 최신 작품집은 스펙트럼 여기서 저기를 오가며 시간을 쌓아올린 우리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과거를 새로 쓸 수 있다고 말하는 믿음의 영역에 놓인 소설을 읽으며 저도 금강산 자락의 삼일포를 누릴 저 자신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불가능한 시점에 불가능한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 소설의 일이 이런 게 아닌가 합니다.
- 알라딘 한국소설/시/희곡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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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쪽 : 한 달 정도가 지난 뒤에야 나는 내가 쓴 것들을 다시 읽을 수 있었다. 쓸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 부끄러웠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자 새로운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일어난 일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그 일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지금 _3문 3답
Q :
초기 치매 진단을 받은 실존 인물, 20년 동안 일본에 거주하다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져 한국으로 오게 된 <호경>의 이야기를 보며 우리의 나이든 모습, 취약해진 모습을 함께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인현 작가는 호경의 어떤 취약함에서 특히 나와 닿아있는 모습을 발견했을지 궁금합니다.
A :
할머니는 호경과 비슷한 시기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없었고,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언어로 거의 표현하지 못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옆에서 할머니가 웅얼거리는 말을 통역해 주셨어요. 저는 어린 나이여서 가끔 만나는 할머니의 그런 모습이 무척 낯설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여전히 청소년이었는데 가족 누구도 할머니의 죽음에 관해서 설명해 주지 않았어요. 그런 마음이 저에게 오래 남아 있습니다.
호경은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얻은 치매 증상과 갑작스레 일본에서의 삶이 중단되며 생긴 언어의 어려움을 이중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경을 만났을 때 바로 할머니를 떠올린 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와 호경은 제 안에서 서로 다른 곳에 존재하다가 책을 쓰면서 연결되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호경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할머니의 유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호경 사이에 제가 징검다리로 존재한다면, 저에게도 저의 뜻을 정확하고 충분히 잘 말하지 못한다는 감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감각을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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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초기 치매 진단을 받은 실존 인물, 20년 동안 일본에 거주하다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져 한국으로 오게 된 <호경>의 이야기를 보며 우리의 나이든 모습, 취약해진 모습을 함께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인현 작가는 호경의 어떤 취약함에서 특히 나와 닿아있는 모습을 발견했을지 궁금합니다.
A :
할머니는 호경과 비슷한 시기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없었고,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언어로 거의 표현하지 못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옆에서 할머니가 웅얼거리는 말을 통역해 주셨어요. 저는 어린 나이여서 가끔 만나는 할머니의 그런 모습이 무척 낯설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여전히 청소년이었는데 가족 누구도 할머니의 죽음에 관해서 설명해 주지 않았어요. 그런 마음이 저에게 오래 남아 있습니다.
호경은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얻은 치매 증상과 갑작스레 일본에서의 삶이 중단되며 생긴 언어의 어려움을 이중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경을 만났을 때 바로 할머니를 떠올린 건 아니었습니다. 할머니와 호경은 제 안에서 서로 다른 곳에 존재하다가 책을 쓰면서 연결되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호경에게 관심을 가진 것은 할머니의 유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호경 사이에 제가 징검다리로 존재한다면, 저에게도 저의 뜻을 정확하고 충분히 잘 말하지 못한다는 감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감각을 조금이나마 풀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
이인현 작가는 다큐멘터리 작업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영상으로 기록하기와 소설로 옮기기가 어떤 점이 다르다고 느꼈는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A :
다큐멘터리에서 배운 점은 상대방과 어떤 거리에서, 어떤 자세로 서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어요. 카메라를 든 나는 상대방과 친밀하다면 가까운 거리에, 그를 관찰하고 있다면 먼 거리에 섭니다. 때로는 거리를 유지하며 그를 냉정히 바라봐야 합니다. 때로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를 깨어 그를 순전히 껴안아야 합니다. 그건 다큐멘터리가 늘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과 장소, 인물에서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일 거예요. 제가 그런 일을 능숙하게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것도 이제는 알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 소설은 분명하게 다큐멘터리보다 더 사후적입니다. 어떤 시간이 지난 후에 그 일을 곰곰이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곱씹어 되돌리고,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럴 때 소설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되지 않고 넓게 펼쳐집니다. 그래서 저라는 사람에게는 다큐멘터리보다 소설이 더 편안하게 느껴져요. 저는 저에게 일어난 일 앞에 망설이며 오래 머물러 있고, 그렇게 얻은 작은 조각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거든요.
Q :
책의 뒷부분에 '호경이 쓴 편지 속 시'가 있는데요. 이 꼭지에서 호경에서 저는 그리움이 많은 사람으로 호경을 읽었습니다. '당신이, 당신만의 호경을 그려나갈' 독자에게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A :
호경이 ‘그리움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호경이라는 사람을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실존 인물인 호경을 넘어 제가 쓴 호경이라는 사람까지도요. 아마 이 책을 다 읽고 난 독자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거로 생각해요. 책을 읽고 여러분에게 남는 호경은 명랑한 사람일 수도, 아픔을 가진 사람일 수도,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호경이란 사람을 무엇이라 정의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우리는 모두 서로의 존재를 기억으로 가지고 있어요. 그 기억은 각자가 다 다를 것이고, 그 서로 다른 기억을 나눠 가지고 있어 우리는 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그 기억을 소설로 쓴다는 것은 무엇인지, 저에게는 지금 이 순간의 모든 의미가 미스터리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기억을 간직한 한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야말로 광대한 의문이 되겠죠. 여러분이 그 의문을 오래 간직해주시길, 호경 앞에서 망설이며 오래 머물러 주시기를 바랍니다. 호경의 기억을 나눠 가졌기에 독자 여러분과 저는 우리가 될 수 있다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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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MD는 지금 
윤보인의 테마소설집을 받아들고 목차부터 웃음이 났습니다. 동부이촌동, 압구정 현대, 한남3구역, 테헤란로... 각 지역의 풍경과 이 지명을 들을 때 제 마음이 얼마나 탁해지는지 생각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있던 자리를 뭉개고 새로 짓는 브랜드 아파트의 청약 미달 소식, 동네 슈퍼 앞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모델하우스 장사들과 그들이 뿌리는 공짜 휴지... 남일일 수 없기에 이 모든 풍경은 사람을 '긁히게' 합니다.
2020년대의 한국소설은 욕망을 정면으로 바라봅니다. ' 압구정 현대 아파트에 입성하겠다는 일념하에 등기부등본을 들고 전국 팔도를 뛰어다니는 매우 다채로운 ‘플레이어’들'이 소설에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소설을 읽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새로 보게 될 것입니다.

출판사는 지금 : 아침달
지옥에서 만나도 다 좋다는 느낌
“시가 아닌 것을 시라고 우기는” 조금 특별한 시인이 있습니다. 바로, 농담과 희비극으로 한국문학에 새로움을 더해온 시인 김승일입니다. 시인은 오랜 사고실험을 통해 독창적인 문법을 다지는 동시에 청소년 시를 쓰며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담아왔는데요. 다섯 번째 시집 『다 좋다는 느낌』은 이 두 가지 작법이 고스란히 녹아든 하이브리드 시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웃기고 슬픈 시집이에요.
『다 좋다는 느낌』에는 독특한 화자들이 등장합니다. 떼를 쓰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부모, 체육센터 수영장에 오줌을 싸려 하는 회원, 고양이에게 마술을 보여주는 사람, 어장 관리 대상이 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 등등. 시를 읽다 보면 애처로우면서도 귀여운 이 화자들을 점점 아끼게 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 거듭 반복되는 척박한 환경에 던져져 있기 때문이지요. 이들의 모습에 스스로를 대입하며 읽다 보면 블랙코미디 영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합니다.
산문집 『지옥보다 더 아래』는 지옥 같은 삶을 조금 더 살아보게 하는 신묘한 힘을 지닌 책입니다.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학교)에 가기 싫고, 하기 싫은 일을 하기도 싫고, 싫어하는 음식을 먹는 건 더 싫고,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 마음을 읊어주듯 시인은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지옥을 충실하게 기록했습니다. 그의 지옥은 양재천에, 한국의 대형 종교 건물에, 오이 반찬에 나오는 급식소와 홍대 라이브 클럽에 있어요. 각자의 지옥을 이렇게 나열해놓으면 그래도 웃기니까 조금 더 힘내보자, 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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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만나도 다 좋다는 느낌
“시가 아닌 것을 시라고 우기는” 조금 특별한 시인이 있습니다. 바로, 농담과 희비극으로 한국문학에 새로움을 더해온 시인 김승일입니다. 시인은 오랜 사고실험을 통해 독창적인 문법을 다지는 동시에 청소년 시를 쓰며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담아왔는데요. 다섯 번째 시집 『다 좋다는 느낌』은 이 두 가지 작법이 고스란히 녹아든 하이브리드 시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웃기고 슬픈 시집이에요.
『다 좋다는 느낌』에는 독특한 화자들이 등장합니다. 떼를 쓰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부모, 체육센터 수영장에 오줌을 싸려 하는 회원, 고양이에게 마술을 보여주는 사람, 어장 관리 대상이 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 등등. 시를 읽다 보면 애처로우면서도 귀여운 이 화자들을 점점 아끼게 됩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모순이 거듭 반복되는 척박한 환경에 던져져 있기 때문이지요. 이들의 모습에 스스로를 대입하며 읽다 보면 블랙코미디 영화를 감상하는 것처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듯합니다.
산문집 『지옥보다 더 아래』는 지옥 같은 삶을 조금 더 살아보게 하는 신묘한 힘을 지닌 책입니다.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학교)에 가기 싫고, 하기 싫은 일을 하기도 싫고, 싫어하는 음식을 먹는 건 더 싫고, 원하지 않는 장소에서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 마음을 읊어주듯 시인은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지옥을 충실하게 기록했습니다. 그의 지옥은 양재천에, 한국의 대형 종교 건물에, 오이 반찬에 나오는 급식소와 홍대 라이브 클럽에 있어요. 각자의 지옥을 이렇게 나열해놓으면 그래도 웃기니까 조금 더 힘내보자, 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지옥보다 더 아래』와 『다 좋다는 느낌』은 태어날 때부터 운명의 짝꿍이었던 듯 연관성이 많습니다. 산문집을 먼저 읽고 시집을 읽으면 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시집을 먼저 읽고 산문집을 읽으면 시편들의 의미가 확장되며 새로이 읽힙니다. 아무래도 지옥에 있으려면 무기가 필요할 테니 표지로 세계관을 살짝 연결해볼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김승일의 책을 읽고 있으면 “지옥보다 더 아래”에 있다 해도 왠지 모르게 “다 좋다는 느낌”이 듭니다.
시원한 바람이 부는 가을, 두 책을 통해 김승일의 시 세계를 좀 더 가까이 만나주세요.
- 아침달 편집부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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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표지로 만나는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리커버 두 권을 함께 놓아봅니다. <라스트 젤리 샷>으로 제6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한 청예의 오컬트 복수극이 이야기의 점도에 걸맞은 진한 피빨강 표지로 찾아왔습니다.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천 개의 파랑>으로 수상한 천선란의 살리는 이야기, <이끼숲>은 뮤지컬로 무대에 오르는 것을 기념하여 숲의 시선 에디션으로 독자를 만납니다. 거칠게 그어놓은 선으로 숲을 상상하게 하는 표지가 싱그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