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현상이 된 두 권의 시집. <샤워젤과 소다수>, <심장보다 단단한 토마토 한 알>로 10만 독자를 만난 고선경이 새까만 여름 밤 같은 시집으로 새로운 문을 연다. 예쁘게 차려 입고 과일 케이크도 먹고 셀카도 많이 찍은 낮이 지나면 얼음 위로 쏟아낸 위스키 같은 밤이 찾아온다. '부드럽고 끈적이는 마시멜로를 질겅'(19쪽)거리며 '마이멜로디'를 뽑을 수 있는 인형뽑기 '갓챠GOTCHA'를 하면서 화자는 순간 생각한다.
'덜렁거리는 집게로 신의 내부를 헤집고 싶다'(20쪽)
귀여운 전자 음악이 흐르는 인형뽑기방, 표정을 숨길 수 없는 환한 조명 아래에서 이제 고선경의 귀엽고 폭력적인 시 속 화자는 출근 시간을 생각한다.
이제부터 꽃길만 걷자는 사람에게 흰 국화밭 보여주고 싶었던 거 (<순수하고 뒤숭숭하며 존경스러운>, 14쪽)
꽃길 걸으라는 한 마디조차 귀에 거슬릴 때가 있다. 고선경의 시는 그런 순간을 포착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젊은 여성이, 더구나 '소녀'적인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사람이 도시에 사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난지한강공원에서 '내가 넘어지면 깜짝 놀란 눈으로 잠시 내려다보지만 끝내 손 내밀지 않는 사람들'(<남자 친구가 정신과 약 먹는 여자를 싫어해요>, 39쪽)의 당혹스러워하는 얼굴을 볼 때 '멀어진 친구가 업로드한 인스타 스토리'(<물거품과 면도날>, 84쪽)를 굳이 열어볼 때. 사랑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을 때 고선경 풍의 센티멘탈은 위스키의 맛과 향처럼 코를 자극한다. 읽고 나면 조금 취하고 싶어지는 시. 어둑어둑 감각적인 여름 밤으로 친구가 될 독자를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