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에 있다는 것>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클레르 마랭의 신작. <제자리에 있다는 것>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이 문장의 리듬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쉬운 입맛을 다신 독자라면 이 책에서 다시 그리웠던 읽기의 느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책에서 클레르 마랭은 '단절'을 주제로 존재와 삶에 대한 통찰을 돌돌 풀어낸다. 그가 주목하는 단절'들'은 다층적이다. 파괴적 사건이 벌어진 후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된 과거의 나와의 단절, 나의 변화로 인한 가족과의 단절, 나와 삶을 공유해온 사랑하는 사람과의 단절, 망가져가는 세계의 생태적 단절... 그는 여러 종류의 단절들 사이를 매끄럽게 오가며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이 깃든 문장들을 쉼 없이 이어간다.
원서로는 <단절(들)>이 먼저 출간되었기에, 이 책 안에서 <제자리에 있다는 것>으로 연결되는 단상의 시초들이 종종 발견되기도 한다. 읽다 보면 단절과 제자리라는 얼핏 상관없어 보이는 두 단어가 꽤나 가깝게 연결되어 있음을 감각하게 된다. 두 책 중 어느 것을 먼저 읽어도 괜찮다. 다만 한 권을 읽으면 반드시 다른 한 권 또한 망설임 없이 집어 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