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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출간된 소설집을 읽으며 겨울을 미리 살아보는 것은 김연수적인 경험이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2022), <너무나 많은 여름이> (2023)를 거치며 2020년대의 김연수는 미래가 과거의 일을 새로 쓸 수 있다는 것, 이 불가능의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믿음의 소설을 지속했다. 그림책 작가 이수지가 자신의 그림책 <눈 내리는 삼일포>를 한 장씩 넘겨가며 보여주는 광경 속에서 소설가는 미래에 쓰게 될 소설을 만났다. 시간의 여행자들은 삶을 다시 쓰고, 고쳐 쓰고, 마침내 계속 쓰면서 미래의 내가 된다.
조선 후기 화가 심사정(1707~1769)이 그린 '삼일포'의 하늘과 호수,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동그랗게 파먹은 벌레의 일이 있고, 눈처럼 보이는 동그라미의 흥취를 살려 보존한 간송 미술관의 일이 있고, 이 구멍을 흰 눈송이가 날리는 겨울 풍경으로 읽은 그림책 작가의 일이 있고, "이 구멍들처럼 저의 인생 역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틈이 생기며 빛이 스며들 것"(145쪽)이라고 말하는 등장인물 '덕암'의 이야기를 상상한 소설가의 일이 있다. 김연수의 소설은 시간축을 오가며 이 각자의 오해와 이해, 당시의 최선과 다시 쓰는 최선을 반복하며 삶을 새로이 살아볼 것을, 그렇게 여행을 이어나갈 것을 권한다.
심사정의 그림 위를 스쳐지나갔을 벌레의 일을 묵상하며 김연수의 소설 속에 신선처럼 머물고 싶다. 김연수의 '가능세계'에서 '가만히 누워서도 천하를 둘러볼 수 있는' 와유의 경지를 경험하며 더 깊은 가을로, 갈 수 없는 곳, '삼일포'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