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의 문장은 생활 가까이에 있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곁에서 듣는 듯 익숙하고 생생해서 어느새 그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다 방심한 순간, 우리가 애써 감추고 싶은 속내와 욕망을 정확하게 들춰내는 문장을 만난다. 너무 정확해서 뜨끔하고, 때로는 마음 한구석이 시큰해진다. 평범한 일상의 말로 이토록 사람을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건 박완서가 평생 상황에 꼭 맞는 언어를 찾아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박완서의 낱말들>을 펼치면 나스르르, 난분분하다, 어름어름 같은 말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요즘에는 잘 쓰지 않아 생경한 우리말도 있고, 어렴풋이 뜻을 알 것 같은 익숙한 말도 있다. 낱말만 놓고 볼 때는 그 뜻과 쓰임이 선뜻 와닿지 않다가도, 박완서의 소설 속 문장과 함께 읽으면 비로소 말의 의미가 또렷해진다. 아, 이 장면에는 이 말이어야 했겠구나, 하고. 책상 가까이에 늘 사전을 두고 ‘상황에 딱 맞는 진실된 언어’를 찾았다는 작가의 흔적이 그렇게 120개의 낱말 속에 남아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감정을 느끼고, 여러 순간을 지나면서도 그것을 몇 개의 익숙한 말로 뭉뚱그려 표현하곤 한다. 좋다거나 싫다거나, 기쁘거나 짜증 난다는 말만으로는 미처 설명되지 않는 마음도 분명 존재한다. 박완서의 문학 안에서 발견한 꼭 맞는 낱말 하나가 미처 이름 붙이지 못했던 마음에 이름을 건넨다. 새로운 말 하나를 더 알게 된 만큼,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삶의 모습도 조금씩 넓어진다.